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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미성2019-06-19 16:15:04 | 조회 : 81  
제목   여성학 스터디(이끔이반)-5월

일시: 2019. 05. 15(수) 오후 4시
참여자: 이경옥, 김정애, 황미정, 감수진, 남애리, 한혜진, 손은진, 강미성(총8명)
주제: 나혜석, 글 쓰는 여자의 탄생
장소: 성폭력상담소
차기일정: 2019. 06. 12(수) 오후 4시
              인권 상담소
주제: 엘렌식수의 메두사의 웃음

2019년 5월 15일 한혜진
나혜석  글 쓰는 여자의 탄생을 읽고

  경희도 사람이다. 그다음에는 여자다, 그러면 여자라는 것보다 먼저 사람이다.
또 조선시대 사회의 여자보다 먼저 우주 안 전 인류의 여성이다. (여자계)1918.3
  “여자는 아무리 많이 배워봤자 결혼해 애 낳고 나면 끝이다“ 라는 말은 그 당시에도 지금에도 통용되는 말이다. 지금에야 옛날보단 좀 편해지지 않았냐고 할 수 있지만 여전하다. 여성의 가사노동 시간은 크게 줄지 않았고 아이를 육아하는 시간도 여성이 더 많이 할애한다.
  정조관념을 지키기 위하여 신경쇠약에 들어 히스테리가 되는 것보다 돈을 주고 성욕을 풀고 명랑한 기분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마 현대인의 사교상으로도 필요할걸요.
  그러기에 인문이 발달해질수록 독신지가 많이 나고 성욕 해결만 진다면 가정이 필요없이 될 수 있는대로 독신시기를 늘리게 하는 것이지요.(삼천리)1935.10
  현재의 시대상을 잘 보여주는 글이다. 이글은 1935년에 쓰여졌다. 84년전에 쓰여진 이글을 보며 실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미래를 바라보는 눈이 있었던 것일까? 그만큼 많이 배웠고 솔직했고 글을 쓰는 필력이 대단했던 나혜석이다.
  나혜석은 우리나라 여성으로서는 최초의 서양화가이자 작가이며 근대적 여권론을 펼친 운동가이다.
  나혜석이 밝힌 바와 같이 그녀는 당대 시대를 앞서간 여성 지식인이었으나 희대의 스캔들에 휩싸여 35세에 이혼한 후 고된 말년을 보냈다.
  김우영에게 동등한 결혼조건을 내걸고 당당했으나 최린과의 관계 때문에 가족과 지인들에게 그 당시 분위기는 그녀를 비아냥 거리기에 바빴고 결국 이혼을 당하고 아이들도 만나지 못하고 요양원에 들어갔다가 끝내 객사 했다는 얘기에 가슴이 아팠다.
  지금에서야 나혜석의 글이 회자 되고 그녀를 기억해주지만 그때의 마음이 어땠을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많은 글을 남겼으며, 논설과 문학을 넘나드는  활동을 통해 전통적인 여성관에 도전했다. 죽는 순간까지 글을 쓰고자 하는 의지를 보며 그녀는 생각보다 행복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잠시 해본다.
  나혜석의 글은 100년이 지난 후 지금 현재 읽어도 전혀 낡지 않았다. 아니 100여 년이 지났지만 오히려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듯하다.

  ‘글 쓰는 여자의 탄생’
                           손채빈
  이 책의 제목만 봤을 때는 나혜석에 대한 글이 주가 되는 책인줄 알았는데 읽어보니 나혜석이 쓴 글이 주가 되는 책이였다.
  나혜석은 소설가이자 화가이며 독립운동가이자 페미니스트이다.
자신이 신여성으로 살다 객사한 여자로 기억될 것을 예상이라도 했던 것인지 나혜석은 자신의 생각을 글로 써서 남겼다.
  나혜석은 떠돌다 객사한 여자가 아니라 이혼하고 자신을 찾은 나혜석으로 기록되어야 더 맞는 것 같다. 나혜석이 쓴 글들이 오래 전에 썼던 글들이라 조금은 이해하는데 있어 어렵지 않을까 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고 작가라는 호칭이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나혜석이 작가로 살았던 이유는 조선에서는 여자의 말을 듣지 않기 때문이고 자신과 같은 사람이 어딘가에서 자신의 글을 읽을 것이라 희망했기 때문이다.
  네 명의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자신의 재능을 살리지 못하고 아이들을 키우고 살림을 해야하는 조선 여성의 삶을 통렬하게 비판했던 여성 나혜석은 오늘날 현대의 여성들이 느끼는 생각과 그리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어떤 마음이 들지 문득 궁금해졌다.
  시대를 앞서간 나혜석은 여성의 삶을 말했을 뿐만 아니라 글로 남겨두었다는 점에서 굉장히 놀랍다. 삶을 마감할 때까지 누구보다 치열하고 뜨겁게 살았던 나혜석을 이 책을 통하여 만날 수 있어 행복한 시간이였다.
  여성으로서, 예술가로서, 나를 잊지 않는 행복의 기준을 갖고 살아간 나혜석의 삶에서 많은 것들을 느끼고 배웠다. 나혜석은 이혼 후 절망과 좌절감이 컸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에 더욱 집중하고 자신의 일과 이상에 충실했다.
  그녀의 인생이 행복했는지는 나혜석 자신만이 알겠지만, 나혜석의 삶은 100년이 흐른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큰 울림을 준다.

나혜석, 글 쓰는 여자의 탄생
                                이경옥
  30여년 전 나혜석의 전기를 읽은 적이 있다. 이때 나도 여성운동 단체의 회원으로 막 발을 내딛을 때였다. 여성운동의 선배가 부모성 쓰기 운동을 하면서 ‘임나’를 썼다. 아버지 성은 ‘임‘이지만 ’나‘씨는 어머니 성이 아니고 나혜석에 대한 존경의 의미로 성씨를 사용한다고 설명했다. 그 시절에도 나혜석은 여성운동의 대모였을 뿐만 아니라 그 당시 10, 20대   여성들에게 나혜석 전기 책을 필독서로 읽힐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 이 책을 읽었을 당시는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았지만 시대를 앞서간 불행한 인텔리 여성의 삶일 줄만 알았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보통의 여성의 삶과는 다른 삶‘이라고만 생각했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서 일본 유학을 가고 화가로 활동하고 글을 쓰는  뛰어난 여성의 삶을 동경은 하지만 평범한 나는 그렇게 살 수 없을 것이라고 하루하루를 꾸역꾸역 살았다.   그의 병려 환자로서의 쓸쓸한 죽음은 가부장제에 도전하면 여성의 삶은 이렇게 불행해 진다는 교훈을 알려주는 것 같았다. 이때 여성들에게 많이 팔렸던 여성들의 전기를 쓴 사람들도 남성적 관점으로 전기 글을 쓰지 않았을까. 여성들은 남성들이 만든 질서를 흔들면 불행해진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남성사회의 질서에 편입해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주입시킨게 아닐까 싶다.
  나혜석은 한국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였지만 이 책에서는 ‘글 쓰는 여자의 탄생’이라고 이름을 붙인 것은 그의 글쓰기가 여성주의 글쓰기였다는 것이다. 여태껏 남성의 질서에서 남성의 관점에서 쓴 글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과 사상을 기존질서에 벗어나서 두려움 없이 글을 썼다. 자신이 쓴 ‘모(母)된 감상기’를 비판한 글에 대해 ‘백결생에게 답함’이란 글에서 만들어진 ‘모성’에 발표한 것이 제일 정직하고 제일 용감한 말이었다고 말한다. 남성 비평가인 백결생이 어쭙잖게 모성에 대해 비판한 것에 대한 용기 있게 비판하였다. 100년 전에도 임신, 출산, 육아의 경험이 없는 남성들이 여성들의 경험의 목소리를 듣지도 않고 여성들의 목소리를 닫게 만들려는 것처럼 오늘날에도 그런 남성들이 존재한다. 그 때나 지금이나 남성들이 많이 하는 말 ‘여성들은 의무는 하지 않고 권리만 주장하는 이기주의다’라고 여성들을 비판한다. 어처구니없게도 남성들은 자기 스스로를 돌보지도 못해 평생 여성들의 무상 돌봄을 받는 지독한 이기주의자들이지만 많은 권리를 행사한다.
  하지만 지금은 가부장제의 질서를 깨트리는 여성들의 목소리가 넘쳐나고 있다. 나혜석은 자기의 목소리가 공명되기를 바랐으며, 지금까지 공명되고 있다.
  ‘나를 잊지 않는 행복’에서 나혜석은 ‘행복이 평온무사한 것을 행복의 초점으로 삼는다면 행복은 확실히 우리 생활을 고정시키는 것이고 활기 없게 만드는 것이며, 게으르게 만드는 것이요, 우리로 하여금 퇴보자요, 낙오자가 되게 하는 것이다.’
  나혜석은 행복은 무엇이라고 정의할 수 없지만 나를 잊지 않고, 내 안에 힘을 믿고 나를 잊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라고 한다. 고정된 동일성의 철학에서 벗어나 차이를 만들어갈 때 나를 잊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나혜석은 항상 자신이 원하는 무엇가를 추구했으며, 현재의 환희를 맛보며 살려고 했고, 그것들을 실천하며 살았다.

이혼고백서 中 /
  조선 남성들 보시오.
  조선의 남성이란 인간들은 참으로 이상하고, 잘나건 못나건 간에 그네들은 적실, 후실에 몇 집 살림을 하면서도 여성에게는 정조를 요구하고 있구려.
  하지만, 여성도 사람이외다 !
  한순간 분출하는 감정에 흩뜨려지기도 하고 실수도 하는 그런 사람이외다.
  남편의 아내가 되기 전에, 내 자식의 어미이기 전에 첫째로 나는 사람인 것이오.
  내가 만일 당신네 같은 남성이었다면 오히려 호탕한 성품으로 여겨졌을 거외다.
  조선의 남성들아, 그대들은 인형을 원하는가.
  늙지도 않고 화내지도 않고 당신들이 원할 때만 안아주어도 항상 방긋방긋 웃기만 하는 인형 말이오.
  나는 그대들의 노리개를 거부하오.
내 몸이 불꽃으로 타올라 한 줌 재가 될지언정, 언젠가 먼 훗날 나의 피와 외침이 이 땅에 뿌려져,
  우리 후손 여성들은 좀 더 인간다운 삶을 살면서 내 이름을 기억할 것이라.

  그 시대가 나혜석을 거부했으나 나혜석은 100년이 지난 현재에 다시 부활했고 지금은 이를 공명하는 많은 후배 나혜석들이 페미니즘을 실천하고 있다.
  이 책을 읽고 나니까 30대 요절한 천재작가로 불려진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의 전혜린의 책도 다시 해석한 책을 읽고 싶다. 한국 선각자 여성들의 삶에서 이어진 페미니즘이 우리에게도 있다. 그리고 페미니즘 책을 읽고 나의 느낌과 소감에 대해 꾸준히 글을 써야겠다.

나혜석, 글쓰는 여자의 탄생
                               감수진
  일단 이책을 읽으면서 내용에 대한 공감이나 이해가 조금 어려웠다.
하지만 100여년전에 쓴 글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놀라웠다.
책을 읽다 눈에 들어온 말이 있었다.
“계집애를 일본까지 보내다니 계집애가 시집가기를 싫다니 그런 망칙한 일이 어디 있어. 남이 알까 봐 무섭지. 벌써 적합한 혼처를 몇 군데를 놓쳤으니 어떻게 하잔 말이야”
‘이땐 여자에게 시집은 의무였고 강제적이였나보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에 어린나이에 부모가 정해준 상대와 결혼을 해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저 말을 통해 마음에 와닿았던 것 같다.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고 싫다라고 말할 경우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받고 핀잔을 받는 시대였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도 많이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100년동안 여성의 인권은 얼마나 높아졌는가? 이책을 읽으면서 내가 경험해보지 않았지만 주위에서 봐왔던 내용들을 볼 수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독박육아, 여성이기 때문에 이렇게 행동해야한다 등 현재와 과거가 크게 변화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지금의 내가 이 시대에 살아가며 같은 경험을 하게 된다면 나는 어떻게 말하고 행동할 수 있을까 모든 일에 나의 뜻을 이야기 할 수 있을까?
  이책은 참 많은 고민을 하게 만든 책이였다.
  평생 나는 나에게 되묻게 될 것이다.
  100년이나 앞서나간 독립운동가이자 페미니스트 나혜석, 나도 그녀처럼 살 수 있을까?

나혜석, 글 쓰는 여자의 탄생
                                    남애리
  <모(母)된 감상기> 결혼과 동시에 출산이라는 큰일을 치르며 일하는 여성으로서의 입지를 굳힐만한 시기에 일하는 여성이 겪게 되는 여러 가지 난관들을 너무나도 생생하게 담고 있었다.
  여성의 모성이 타고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나혜석은 모성은 경험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이야기 하고 있다.
  지금 20~30대는 집이나 학교에서 여성으로 차별받거나 한계를 크게 경험하지 못하다가, 사회에 나가 그 벽을 실감하게 되는 것 같다. 기회를 얻지 못하거나 폭력에 노출되고, 결혼·출산·육아 등의 문제를 겪으면서 여성으로서의 정체성, 여성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 고민하는 걸 많이 보았다. 다들 정말 똑똑하고, 사회에서 좋은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데  막상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답답함을 크게 느끼고 있다.
  최고의 스펙을 갖췄는데도 어떤 분야든 고위직으로 올라갈수록 “왜 여성이 극소수일까?”, “왜 어떤 지점에서 주저앉게 됐을까?”에 대한 궁금증과 의문점은 일하는 여성들이라면 공감하는 부분이다. 지금은 전체적인 교육 수준이나 여성의 사회 진출 비율, 여성 인권은 분명 향상됐지만, 일하는 여성으로서 갖는 한계는 어떤 면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음을 절실히 느낀다.
  나혜석은 유학을 가고 앞선 문명을 보고 경험하지만 막상 조선에 돌아왔을 때 기다리는 건 차별과 좌절뿐이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자기답게 살려고 노력했다. 타협하지 않고 나답게 사는 것, 끝까지 살아남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던 것이다.
  나혜석의 이런 용기들이 감동으로 전해오는 것 같다.
일과 여성의 삶이 별개가 아니다 라는 메시지가 담겨있는 듯하다.
  나는 일하는 여성으로서 자주 이런 생각들을 해왔다. 지금 하는 일을 언제까지 계속할 수 있을까?, 열심히 하다 보면 내가 꿈꾸는 자리에서 뜻을 펼칠 수 있을까? 이런 생각들을 하다가도 내가 꿈꾸는 자리에 대한 열망도 때로는 현재의 익숙함에 안주하고 잊고 지내기도 한다.
  나혜석은 무엇보다 자기 일을 사랑했고 소중하게 여겼다.
결국 자기를 사랑하고 자기 일을 사랑하면 더 나은 세상을 꿈꿀 수 있는 것일까?
  의문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해보려는 것, 그 안에서 나는 어떤 가능성을 찾아보려고 한다.

         나혜석,글쓰는 여자의 탄생
                                     황미정
-나혜석을 바라보는 두가지 시선.
  첫째는,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유화가,문학가,민족운동가,여성해방론자
  둘째는,현대를 살아가는 개방적인 여성이라는 것은 찬성하지만 결코 미화될 수 없는 난해함을 지닌 여성.
-여성의 지위가 하찮은 존재로 부각되는 시기에 그녀가 추구하는 것은 남녀의 구분이 아니라 스스로 자신을 복종하는 여성이 아닌 밖으로 나와 남자들과 동등한 입장에서 살아가고자 하였다.
  남자들도 하기 어려운 서계여행과 유럽 유학,신문물을 접하면서 시대보다 더 앞장서서 세상을 살아간 여성이였다.
-나혜석은 문학작품을 발표하고 문학을 공부하는 것도 사회적 실천.여성이 진실을 밝히는 글을 내놓으면 언제나 불편해하던 시기에 나혜석이 굳이 글을 내는 이유는 왜곡되어 가는 진실을 바로잡고 싶어했고, 자신의 삶을 함부로 말하는 사람들과 맞설
방법은 스스로 자기 삶을 글로 써서 발표하는 일이라 생각하고 실천함.
  그녀는 글쓰기를 통해 자기 존재를 증명하고, 여성들과 소통하며 억압적인 사회와 맞서 싸우려 했다.

나혜석, 글쓰는 여자의 탄생
  나혜석 지음, 민음사
  발표자 : 김정애

■경희도 사람이다. 그다음에는 여자다. 그러면 여자라는 것보다 먼저 사람이다, 또 조선 사회의 여자보다 먼저 우주 안 전 인류의 여성이다. 이철원 김 부인의 딸보다 먼저 하느님의 딸이다. 여하튼 두말할 것 없이 사람의 형상이다. 그 형상은 잠간 들씌운 가죽뿐 아니라 내장의 구조도 확실히 금수가 아니라 사람이다.
오냐, 사람이다.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 험한 길을 찾지 않으면 누구더러 찾으라 하리!  - p65

■우리에게는 사람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운명이 있다. 그러나 그 운명은 순순히 응종하면 할수록 점점 증장하여 닥쳐오는 것이다. 강하게 대하면 의외에 힘없이 쓰러지고 마는 것이다 - 219
■나혜석은 ‘경희’라는 자서전적 소설을 통해 조선사회에서 여성의 위치와 불합리한 관습을 글로 과감하게 표현하였다.
남편과의 이혼 후, 비난이 시선에도 불구하고 오롯이 자신의 삶을 살기위해 노력하지만 남성위주의 사회적 틀을 무너트리기는 쉽지 않은 삶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편안하게 살 수 있는 삶의 길과 타협하지 않고 부당함에 당당이 맞서며 자신의 삶을 살아가려고 한다.

나혜석, 글 쓰는 여자의 탄생
2019년 오월, 1896년에 태어난 그녀를 기억하다.
                           강미성
  나혜석은 ‘자기 삶을 스스로 이야기하는 여자’라는 서문의 제목처럼 글쓰기를 통해 자기 존재를 증명하고, 여성들과 소통하며, 여성에게 억압적인 사회와 맞서 싸운 투사였다. 그녀에게 글쓰기는 사회적 실천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는데, 총 5부로 나누어진 내용 중에서 3부 ‘사랑과 이혼’ 중 ‘이혼 고백장’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1934년 8월과 9월에 발표한 ‘이혼 고백장’은 제목 그대로 김우영과의 이혼 과정을 담고 있다. 자신의 삶을 고백함과 동시에 남성들의 이중적인 태도를 비판하고 있다. 그녀는 11년 반 결혼 생활을 하며 딸 하나, 아들 셋을 둔 상태로 사랑에 빠졌다. 남편 친구인 최린을 ㅍ리에서 만나 식당과 극장을 돌아다니고, 뱃놀이 등을 하며 연애에 빠진 것이다. 나혜석은 “나는 공을 사랑합니다. 그러나 내 남편과 이혼은 아니 하렵니다.”라고 고백했다고 한다. 만삭으로 개인전을 열고, 페미니즘 소설을 내놓는 등 다양한 화동을 펼치던 나혜석은 최린과의 연애사로 35세 때 이혼 당했다. ‘미증의 불상사, 세상의 모든 공분과 비난을 받으며, 부모 친척의 버림을 받고 옛 좋은 친구를 잃었다.’ 고립된 채 뼈를 긁어내는 듯한 고통을 표현한 부분을 통해 당시 그녀의 심정을 느껴본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고 하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는 ‘이혼’에 대한 부정적인 잣대를 많이 댄다. 결혼도 이혼도 개인의 선택 문제인데, 오지랖 넓게 타인의 삶에 끼어들기를 해 버린다. 나혜석의 ‘이혼 고백장’은 당시의 시대를 고려해 볼 때 ‘대단하다’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멋진 여성이다.  
  나혜석은 자기는 정조 관념이 없으면서 처에게는 정조를 요구하는 남성의 형태를 비판하고, “정조는 도덕도 법률도 아무것도 아니요, 오직 취미다.∼결코 마음의 구속을 받을 것이 아니다. ”라고 외쳤다. 이 외침은 전 근대에 울려 퍼진 남성 중심의 사회를 향한 날 선 도발이었고, 여성의 성적 결정권이 여성 자신에게 있음을 알린 여성 인권 선언문이었다. 하지만 그녀에게 들어온 것은 ‘서방질한 것’혹은 ‘문란한 여자’라는 낙인과 집단 따돌림이었다. 형제와 친척에게마저 따돌림을 당한 채 해방 후의 어느 겨울날 행려병자로 생을 마감한다,
  나는 처음 그녀의 굴곡진 삶을 읽으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소설가, 화가, 독립운동가, 페미니스트로서의 멋진 삶과는 달리 너무나 초라한 죽음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의 글을 읽으면서 삶의 순간순간 보여줬던 용기가 값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녀의 마지막이 씁쓸하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그저 숨만 쉬고, 많은 것을 갖고자 욕심을 내며 긴 세월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경기도 수원에 ‘나혜석 거리’가 있다고 한다. 시간을 내서 꼭 한 번 가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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